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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by 평싸10 2024. 1. 25.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1770년 8월 27일에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나 1831년 11월 14일 베를린에서 사망했다.
헤겔은 독일 관념론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프로이센의 철학자이다.

-생애
이 글은 헤겔이 직접 쓴 본인의 이력서를 번역한 내용이다. 이 글은 1804년까지의 약력을 적었다.
본인(헤겔)은 1770년 8월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다.
나의 부모인 아버지는 운송회계사 고문이었고 어머니는 나의 개인교수 및 고대어 그리고 학문의 기초를 가르치는 슈투트가르트의 공립 김나지움에서 수업을 받게 하여 나를 학문적으로 교육하는데 온 정성을 기울였다. 나는 튀빙겐의 신학원에 입학하여 고전 문헌학을 전공으로 하는 슈 뉘러, 철학과 수학을 공부하는 플리트, 백의 지도아래 공부를 한 후, 철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어서 3년 동안 등 보래, 올란도, 스토커를, 플라크의 지도하에 신학과 관련된 학문을 공부하여 신학과 입학시험에 합격하여 신학과 지원생으로 등록되었다. 나는 부모님의 말씀을 따라 설교 사직을 선택하였고 신학이 가진 고전문학 그리고 철학과의 연계성을 따져 신학 공부에 매진하였다. 졸업 후에는 난 신학을 바탕으로 하는 직업들 가운데 가정 교사직을 나는 베른과 프랑크푸르트에서 찾았고, 내가 결정한 삶의 과제인 학문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6년 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철학에 더욱더 매진 하기로 결심하였다. 예나대학의 명성은 내 장래를 위해 훌륭히 공부할 수 있고 게다가 교수직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곳이었다.

나는 셔링 교수와 함께 '철학 비판 잡지' 두권을 발행하였고 
3년 전부터 철학과 사강 사로 지내면서 나는 여러 강의를 하였고 작년 겨울부터는 수많은 학생이 나의 강의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해에는 공작 관할의 광물학 협회의 제2부의 장으로 되었다.
나의 수많은 연구 가운데 철학이 나의 천직으로 굳어졌기에 나는 친애하는 관계 당국으로부터 정교수로 채용되기를 간절히 갈망한다.

헤겔은 이 이력서를 쓴 지 다음해인 1805년 예나대학의 원외교수 철학자로 채용된다. 1807년에는 헤겔 관념론의 핵을 이루는 정신현상학이 출판되고 1808년엔 뉘른베르크 김나지움의 교장직을 받아들인다.
1812년 논리학이 빛을 보게되며 ,181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자리로 옮긴 뒤 1817년 철학적 학문의 백과사전을 출판한다.
1816년 드디어 베를린 대학의 피히테의 후임교수로서 초빙되어 여기서 사망할때가지 연구활동을 하면서 명성을 얻게 된다.



-헤겔 철학의 기초
헤겔은 세계사를 절대정신이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하였다. 헤겔은 인간의 역사 역시 변증법적 발전을 겪는다고 파악하였으며 그 결과 이성이 최고의 발전 단계에 이르러 더 이상의 변화가 필요 없는 상태를 역사의 종말이 명명하였다. 헤겔은 당대 독일이 역사의 종말 단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하였다가 많은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 개념은 나중에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유명한 논문에 등장한 후 동명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헤겔은 정반합의 개념으로 변증법을 정형화하였다. 헤겔의 변증법은 후 일 헤겔 좌파 철학자들을 거쳐 카를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변증법은 만물이 본질적으로 끊임 없는 변화 과정에 있음을 주창하면서 그 변화의 원인을 내부적인 자기부정, 즉 모순에 있다고 보았다. 원래의 상태를 정이라 하면 모순에 의한 자기부정은 반이다. 만물은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운동하며 그 결과 새로운 합의 상태로 변화한다. 이 변화의 결과물은 또 다른 변화의 출발점이 되고 이러한 변화는 최고의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된다. 헤겔은 정반합이라는 개념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그의 변증법을 설명하기 위해 하인리히 샬리베우스 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헤겔은 정반합이라는 표현대신, 즉자-대자-즉자-대자, 혹은 긍정- 부정 - 부정의 부정 이라는 표현을 썼다.

-헤겔에게 절대정신은 변증법에 의해 도달되는 최고의 지점,  즉 더 이상 변화될 필요 없는 최고의 위치를 뜻한다. 얼핏 보면 헤겔의 변증법적 운동과 고정화된 절대 정신은 상충되는 맥락이 있지만, 이러한 헤겔 철학의 전제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노에시스 노에세오스 개념을 차용하여 절대 정신은 순수 사유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사유하는 사유로서 이러한 모순점을 논리적으로 해결하고자 하였다.

-헤겔철학에 대한 일반적 평가는 독일 관념론의 거성인 칸트 철학에서 출발하여 이를 마무리 지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칸트 철학의 근간은 인식론이며, 이를 기초로 하여 칸트는 소위 "심리 철학' 윤리학 그리고 우주론과 신학에 접근하였다. 칸트의 인식론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은 인식의 주체인 '자아'인데 이 개념은 이미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에 의해서 철학적 연구 대상으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코지토'의 문제는 칸트에게 물론 지대한 관심을 끌었지만 그는 결코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서 '자아'의 문제를 별도로 다루지 않는다. 자아의 문제와 관련하여 헤겔은 칸트철학의 한계성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헤겔은 '개념'의 문제, 다시 말해 인간 사유의 산물 자체를 독자적인 그 무엇으로 간주한 것에서 칸트의 인식론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 인식론에 접근하였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개념'은 헤겔 철학에서 일종의 '논리적 범주' 로서 스스로 운동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와 같은 개념의 운동은 여러가지 헤겔 철학 용어로 풀이되는 바, 개념,이념, 자연,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헤겔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 용어가 도대체 어떤 뜻으로 쓰이며 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먼저 알아야 한다.다음 해인원외 교수보게되며교수 자리로대학 피히테의 후임 교수로서 사망할 때까지연구 활동을끊임없는표현 대신즉자적즉자적지점절대로 정신은상충하는노에 세워서절대로 정신은헤겔 철학에코니토할 것이다범주'로서여러 가지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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