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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논리학자) 1

by 평싸10 2024. 1. 26.


라이프니츠는 1646년 7월 1일에 신성로마제국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나
1716년 11월14일 신성로마제국 하노버에서 사망했다.
라이프니츠는 17세기~18세기의 독일의 수학자, 과학자, 철학자였다.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와는 달리, 라이프니츠는 대학에서 철저한 철학 교육을 받았다. 그는 자기 철학 학사 논문을 감독한 제이컵 토마시우스 교수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지만, 평생에 걸친 스콜라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그가 다른 길을 걷게 만들었다. 라이프니츠는 또한 루터교 대학에서도 존경을 받을 기독교 스페인 사람인 프란시스코 수아레스의 저서를 열심히 읽었다. 라이프니츠는 르네 데카르트,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아이작 뉴턴과 로버트 보일의 새로운 방식과 결론에 깊게 관심을 가졌지만, 그들의 업적을 스콜라 철학의 틀에 갇힌 채로 평가했다. 그런데도 라이프니츠의 방식과 관심거리들은 종종 20세기의 분석철학과 언어철학을 예견했다.

라이프니츠는 물리학과 공학에 많은 공헌을 했고, 생물학, 의학, 지질학, 확률론, 심리학, 언어학, 정보과학 분야에서 나중에 나올 개념들을 예견했다. 그리고 정치학, 법학, 윤리학, 신학, 역사학, 철학, 언어학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 방대한 분야에 걸친 라이프니츠의 공헌은 다양한 학술지와 수만개의 편지, 그리고 출판되지 않은 원고에서 발견되었다.

라이프니츠는 수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이작 뉴턴과는 별개로 무한소 미적분을 창시하였으며, 라이프니츠의 수학적 표기법은 아직도 널리 쓰인다. 라이프니츠는 기계적인 계산기 분야에서 가장 많은 발명을 한 사람 중 한명이기도 하다. 파스칼의 계산기에 자동 곱셈과 나눗셈 기능을 추가했고, 1685년에 핀 톱니바퀴 계산기를 최초로 묘사했으며, 최초로 대량 생산된 기계적 계산기인 라이프니츠 일을 발명했다. 또한 라이프니츠는 모든 디지털 컴퓨터의 기반이 되는 이진법 수 체계를 다듬었다.

이처럼 다채로운 활동을 하면서도 그가 남긴 연구는 방대한 양에 달하지만, 바쁜 생활 탓인지 연구를 편지나 메모 등의 형태로 남긴 게 많다. 철학만 보더라도 생전에 발간한 게[변신론, 사후 출판 가운데서도 그의 사상을 정리한 책은 별로 없다. 그의 철학의 특징은 그 이전의 여러 가지 사상적 대립을 모두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서 조화시킨 점이다. 데카르트적 물체 관과 피에르 가상디의 원자론, 기계 관과 목적관, 섭리와 자유, 경험론과 이성론, 나아가 근세사상과 스콜라 철학의 조화까지 찾아볼 수 있다. 주요 저서로는 [모나드론], [형이상학 서설], [인간 오성 신뢴] 등이 있다.

철학에서 라이프니츠는 낙관론으로 유명하다. 라이프니츠는 일부 제한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웅주가 신이 창조할 수 있는 최선의 웅주라고 결론지었다. 라이프니츠는 르네 데카르트, 바뤼흐 스피노자와 함께 17세기 최고의 3대 합리주의론 자 중 한 명이다. 라이프니츠의 업적은 현대 분석철학을 앞당겼지만, 한편으로 그의 철학은 스콜라 철학적인 면도 있다.

-업적

위상기하학
프랙탈 기하학은 라이프니츠가 말한 자기 유사성과 연속의 성질을 기반으로 브누아 망델브로가 창시한 것이다. 라이프니츠가 '직선은 곡선과 같고 어떠한 부분도 전부와 닮았다.'라고 쓴 것을 보면, 라이프니츠는 2세기 싹이나 먼저 위상수학을 예견한 것이다. 패킹에 대한 일화로, 라이프니츠는 그의 친구이자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인 데스노스에게 원을 하나 그려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안에 접하는 세 개의 합동 원을 최대의 반지름을 가지도록 그리하고 했다. 그러면 이 세 개의 원 사이에 하나의 원을 그릴 수 있고, 이 과정은 무한히 반복 될 수 있다. 자기 유사성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이다. 라이프니츠는 유클리드 공리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같은 원리를 사용하고 있다. 

미적분
라이프니츠는 아이작 뉴턴과 같이 사용한 계산법(미분과 적분)을 발명했다고 알려진다. 라이프니츠의 노트를 보면 그가 처음으로 그래프 밑의 면적을 계산하는데 적분 계산법을 도입한 날이 1675년 11월 11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라이프니츠는 이날 지금도 쓰는 표기법 몇 개를 만들었는데, 그 예로 합을 뜻하는 라틴어의 S를 길게 늘인 적분기호, 라틴어에서 유래한 미분 기호 d가 있다. 이 제안이 그의 가장 큰 수학적 업적이다. 미적분학에서 곱셈 법칙은 현재 '라이프니츠의 법칙'으로 불리고, 덕분 기호 안에 있는 함수를 어떻게 미분해야 되는지 설명한 이론은 라이프니츠의 적분 규칙이라고 불린다.

1711년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 라이프니츠는 존 케일, 뉴턴 등 다른 사람들과 미적분학을 뉴턴과 독립적으로 발견했는지, 원래 뉴턴의 아이디어를 다른 표기법으로 썼는지 긴 논쟁을 하였다.

19세기에 극한에 대한 정의와 실수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오귀스탱 루이 코시, 베른하르트 리만, 차를 구매자 슈트라 와 그 외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더 엄격한 미적분학이 나왔다. 코시는 계속 미적분학의 기본으로 무한소를 사용했지만, 바이어슈트라스에 의해 무한소는 천천히 미적분학에서 사라졌다. 그럼에도 해석학 밖, 특히 과학과 공학에서는 무한소가 계속 사용되었고 오늘날 까지 전해졌다. 1960년에 에이브러햄 로빈슨은 모형 이론을 이용하여 라이프니츠의 무한소의 엄밀한 정의를 설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라이프니츠 증명은 대부분 기하학적 직감에 의한 사실이었다. 라이프니츠는 무한소라고 불리는 수학적 존재를 밝혀냈고, 역설적으로 이것을 대수적 성질에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그 시대의 삼각함수, 로그함수의 수학적 개념은 추상적이었는데, 라이프니츠는 1692년과 1694년에 이를 명소화했다. 또한 가로좌표, 세로좌표, 기울기, 현, 그리고 수직선과 같은 기하학적 개념들을 함수의 그래프로부터 끌어냈다. 18세기에는 함수와 이런 기하학적 개념들 사이의 연관성이 약해졌다.

라이프니츠는 선형 방정식의 계수를 배열로 생각할 수 있다고 하였다. 행렬을 이용하면 그 방정식의 해를 찾는 것이 쉬워지는데, 이 방법은 후에 가우스 소거법으로 명명되었다. 라이프니츠의 불 논리와 수리논리학의 발견 또한 수학적 업적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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