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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플라톤

by 평싸10 2024. 1. 11.

플라톤은 다방면으로 서양 학문에 영향력 있는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이며, 객관적 관념론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며, 대학의 원형인 고등 교육 기관 " 아카데메이아"의 교육자이다.
플라톤은 아테네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났다. 젊었을 때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을 배우고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는데, 그의 저서는 모두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으로 된 변증론에 관한 "대화편'에서 그와 스승과의 학설을 구별하기 힘들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정치가로서의 꿈을 버리고 정의를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키레네 학파로부터 이데아와 변증법의 기초를 얻었고, 피타고라스학파를 접하며 실천적 정신과 실생활에서의 흥미를 얻어 그의 독자적인 사상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가 이성 우위의 전통을 가진 서양철학에 미친 영향은 더할 수 없이 크다. 영국 철학자인 화이트헤드는 "서양의 19세기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라고 얘기 했으며, 시인 에머슨은 " 철학은 플라톤이고 플라톤은 철학 그 자체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자주 등장하는 주요 등장인물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있는 내용과 주장 가운데 무엇이 소크라테스의 것이고 플라톤의 것인지에 관해 많은 논쟁이 있었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가 남긴 저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문제를 자주 '소크라테스의 문제'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수많은 플라톤의 아이디어는 적어도 그의 초기 연구는 소크라테스에게서 가져왔던가 발전시켰을 것이다.
플라톤은 아카데메이아에서 폭넓은 주제를 가지고 강의하였으며 특히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 인식론 등 많은 철학적 논점에 관해 저술하였다. 플라톤의 저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플라톤의 대화편이다. 비록 일부 편지는 단지 그의 이름을 붙여서 전해지지만, 플라톤이 쓴 진짜 대화편은 모두 온전하게 전해진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학자들의 합의에 따라, 그리스인들이 플라톤의 것으로 생각하는 '알키비아데스 1' 과 '클레이 토론' 등과 같은 대화편은 의심스러우며 '데모도 코스'와 '알키비아데스 2' 등과 같은 대화편은 거의 위조되었다고 판단한다. 플라톤의 편지는 거의 다 위조되었다고 여기며, 예외로 일곱번째 편지만 위조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플라톤은 그는 인간의 영혼이 육체와 결합한 충동적이며 감각적 욕망을 추구하는 정욕과, 육체와 결합하지 않으며 불 사적인 순수한 이성으로 되어 있다고 하고 '이성'은 매우 순수한 것이지만 이 세계의 배후에 있는 완전 지성 실 체계인 이데아를 직관할 수 없으며 세상에 탄생하여 육체 속에 듦으로써 이데아를 잊고 있다. 잊었던 이데아를 동경하는 마음이 에로스이며, 현상을 보고 그 원형인 이데아를 '상기'하여 인식하는 것이 진리라고 한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적 부분의 덕이 지혜이며, 정육점 부분의 덕을 절제, 이성의 명령에 복종하여 정욕을 억압하는 기개의 덕을 용기라고 하는 것이다. 올바름이란 여러 덕이 알맞게 그 기능을 발휘할 때의 상태를 말한다. 그는 이러한 덕론 을 통하여 인간 개인의 윤리학을 논하였다. 그러나 정의의 실현은 개인의 덕을 달성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사회 전체의 윤리설 을 주장하였다. 그것이 그의 국가이다.
또한 철인 정치론  전개한 플라톤은 기본적으로 엘리트에 의한 지배를 옹호한다. 일반적으로 귀족정은 평등사회 가 아닌 신분사회 를 옹호하는데, 플라톤 또한 신분사회를 옹호한다. 그러나 플라톤이 말하는 귀족정의 궁극적인 목적과 그 실현 양태는 일반적인 귀족정 과 는 다른 것이었다. 플라톤이 말하는 귀족정에서 왕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와 같은 높은 신분으로서 도덕적 의무를 중시해야 하는데, 그 실현은 한가지 예를 들면 왕의 사유재산 의 형태로 나타난다. 플라톤은 왕의 사유재산 은 오직 공익을 위해서 만 쓰여야 한다고 했고 그 아래 귀족들까지도 사유재산 을 공유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장 높은 신분의 상징인 왕이라면 그만큼 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한 정치 일선을 담당한 일선 '귀족'들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무사 계급에 기반한 귀족 또는 세습에 의한 귀족이 아니라, 철학 지식이 충만한 철학자들을 가리킨다. 플라톤은 '지식인에 의한 독재' 를 줄곧 주장해 왔으며, 시민 계급에 의한 토론 정치인 아테네의 민주정 을 '우민정치' 라고 비판해 왔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이 '세 가지 주된 덕' 에서는 '조화' 라는 그것을 엿볼 수 있는데 네 가지 주된 덕에 맞는 각각의 신분이 각자 맡은 일 만을 해야 하며 그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일을 한다 거나 서민이 전쟁 한다는 것과 은 용기를 보이는 것은 플라톤의 관점에선 사회적 부조화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국가를 개인의 확대로 생각하여 개인에서 정욕의 부분이 농, 서민이며, 기개의 부분은 군인 부분은 통치자 라고 하고, 이성은 당연히 선의 이데아 를 인식하여야 하므로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을 해야 하는 것으로 하는 유명한 철인 정치론을 전개했다. 이러한 통치자의 교육 제도와 방법에서 그의 교육학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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