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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누엘 칸트 -생애 1724년 프로이센의 상업 도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수공업자인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자매 11 명중 넷째로 태어났다. 원래 칸트는 에마누엘 이라는 세례명을 받았지만, 히브리어를 공부하고서는 이마누엘로 이름을 바꾸었다. 칸트 부모는 청교도적 생활을 하였으며, 이는 칸트의 유년 시절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칸트는 1732년 어머니와 친분이 있던 신학자 슐츠가 지도하던 사학교 프리드릭스 김나지움에 입학하고 1740년에 졸업했다. 같은 해 쾨니히스베르크의 대학에 입학하여 철학과 수학을 공부했는데, 특히 마르틴 크누센에게 논리학과 수학을 지도받았다고 한다. 이후 자연과학에 관심을 두었고 아이작 뉴턴의 물리학에 매료되었다. 그는 삶을 통틀어서 단 한 번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100마일 이상 떨어진 곳으로.. 2024. 1. 23.
공자 2 -정치활동 공자는 국정을 쇄신하기 위해 방자하게 권세를 휘두르는 계속 사를 타도하려고 여러모로 계책을 꾸몄으나 일이 성사 단계에 가서 실패하고 말았다. 그 때문에 계속 사의 미움을 받은 공자는 기원전 496년에 노나라를 떠나 수십 명의 수행 제자들과 함께 자신의 학문적 이상을 현실정치에서 실현해 줄 어질고 현명한 군주를 찾아 기약 없는 여정에 나섰다. 공자의 인망은 해를 더할수록 거듭 높아져 기원전 499년에는 대사고(현재의 법무부 장관) 벼슬에 기용되었고 최초 재판관 및 외교관직도 겸하게 되었다. 이 무렵, 공산 불 새는 삼환과 계속 사의 전횡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공자 역시 삼환 등의 무리를 몰아내 어지럽혀진 노나라를 바로잡으려고 이미 일을 꾀했던 데다 도덕 정치 구현에 대한 열망 때문에 반역자 .. 2024. 1. 19.
공자 1 -공자는 기원전 551년 노나라 취푸에서 좀 떨어진 시골인 창평행 추 읍에서 부친 숙량흘과 부친이 60대 후반에 맞은 세 번째 아내인 안정제 사이에서 태어났다. 공자의 조상은 주나라 이전 왕조인 은나라에서 봉토를 하사받은 송나라의 공족이었으며 공자 3대 전에 노나라로 왔다. 그의 집안은 송나라 왕실에서 연유한 명문 가문이었으나 몰락하여 노나라에 와서 살았으며, 부친 숙량흘은 무사였다. 일선에 따르면 모친 안 징 재는 낮은 신분의 무녀였다고 한다. 공자 자가 중이인 이유는 집안의 장남인 맹 피에 이은 둘째 아들이라는 뜻이었다. 흔히 소개하는 공자 가계는 보통 그의 부친 숙량흘과 증조부 공방 속까지 언급하나, 후대에는 보통 공자를 시조로 간주하기도 한다. -공자의 소년 시절을 이야기 하자면 공자가 3살 때 .. 2024. 1. 19.
석가모니 -석가모니는 불교의 교조이며 다른 호칭으로는 세존, 석존, 불, 여래 등 10가지 존칭과 본명인 싯다르타 가우타마가 있으며, 서양에서는 흔히 가우타마 붓다라고 칭한다. -생애 기원전 6세기경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 부근 히말라야 기슭에 카필라바스투라는 중심으로 샷 카 공화국이 있었다. 싯다르타는 그 나라의 황 슈도 다나 와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샷 카 공화국은 일종의 혼합정체가 행해지고 있었다. 하자라는 수장을 교대로 선출하는 독립된 자치 공동체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코살라 왕국에 예속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과 결혼 싯다르타는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여의고 이모인 마하파자 파티의 손에 자랐으며 뛰어난 지혜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자라면서 진리에 관해서도 명상했는데 해.. 2024. 1. 18.